난계 박연(蘭溪 朴堧)


#악성 #난계 #박연(1378~1458)
조선 초기 문신인 난계 박연 선생은 천재적인 음악가이자 음악 이론가로 음악계의 태두이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게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선생은 고려 우왕 4년에 삼사좌윤 #박천석 공의 아들로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초명은 연, 자는 탄부요 호는 난계, 시호는 #문헌공이며 밀양박씨 복야공파 중에 우뚝 선 인물이다.
난계는 영동향교에서 수학한 후 34세인 태종 11년(14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 등 요직을 두루거쳐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고, 관습도감제조로 있는 동안 작곡과 연주 뿐만아니라 악기의 조율, 궁정음악의 정립 및 혁신 등 음악에 관계되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음악은 하늘의 소리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취하고 음양의 도리를 쫒아 발휘하는 자연의 소리기에 음악에는 거짓이 없고, 오직 성과 경으로 인간을 감동시킨다. 음악을 바르게 하고 예를 흥기하는 것은 정서순화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난계는 망국 고려의 난음을 청산하고 순정한 소리로 인심을 순화하는 일에 심혈을 바쳐, #황종율관과 #편경을 제작하였으며, 신악보법 작성에 대한 신비하고 현묘한 음악적인 이야기는 이루말 할 수가 없다.
세월이 가면 물정도 바뀐다. 선생의 셋째 아들 계우가 단종 복위운동에 연루되어 그 화가 난계에까지 미쳤으나, 삼대에 걸친 공신이기에 근근히 생명만은 사면이 되어 팔순의 노경으로 혈혈단신 백의로 낙향하였다. 인생의 무상을 한 자루 피리에 의지하여 자신을 달래던 난계는 81세를 일기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난계는 #초강서원에 배향되었는데,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폐원이 되었고, 1972년에는 #난계사가 이자리에 세워져서 1976년에 지방기념물 제8호로 지정 되었다.
아! 인간 난계는 갔어도 그가 남긴 가락은 영원히 겨래의 심금을 울리며 금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난계는 혜성같이 왔다가 간 동방의 이인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영산후인 김동대 근찬.


#박연 효자비
이 효자비는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명인 박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비석으로, 명문에 의하면 건문 4년인 1402년(조선 태종 2년)에 하사된 것이다. 비석 상부에 가첨석이 없이 화봉형으로 장식된 특이한 형태이다. 제작시기가 명확하고 박연과 고나련된 희귀한 유물로서 역사적 술적 가치가 크다. 고당리 세덕사 경내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것이며, 비문에박연의 초명인 연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박연이 관직에 오르기 전 유물로 보인다.

난계 박연 선생 가훈 17조
1. 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언동을 바로잡아주고 칭찬과 격려로써 글을 익히게 하되, 소학을 숙독한 후에 사서에 들어가야 할지니 내 자손들은 오직 소학을 스승 삼아 잠시라도 게을리 마라.
2. 형제는 부모가 끼친 몸이라. 신의를 바탕으로 사랑하고 권선징악하며 노여움과 원망을 멀리하되, 일가 친척간 은애로써 더 가지거나 배운 자가 후의를 다하라.
3. 집을 다스리는 데는 화순이 으뜸이라, 축첩은 분란의 씨앗이니 적서 상하를 분별하여 본처에게 품결케 하며, 노비 재산 분배는 공평무사하고 모질게 부지리 마라
4. 상처하고 본실 자식이 있거든 재취할 경우 절도와 가정의 평안을 위해 단산녀를 택하라.
5. 자손 중 후사가 없을 때는 같은 파 일가에서 입양하고 마땅찮거든 동성동본에서 택하라.
6. 일가 중 가난으로 과년한 처녀가 있거든 문중에서 금품을 각출하여 출가에 협조하라.
7. 상례는 주자가례에 따르고 애통해 몸이 상하지 않게 하며, 제수는 분수에 맞게 성의를 다하고 과음 포식 송사 여자관계 및 상사 아닌 일로 쏘다님을 삼가라.
8. 부모 상고시 만사 우선하라. 효는 덕의, 으뜸이니 나를 낳아 기르고 가르치신 은혜로움을 명심, 제물은 간략하되 정결하고 숙연히 상례를 치르라.
9. 효도 우애 충성 신의 예의범절로써 가법으로 삼고, 남을 사랑과 믿음으로 대하며 그들의 과실과 비밀을 발설치 말며, 구제하고 경조하며 오직 성훈의 가르침에 따르라.
10. 거문고와 비파는 정통악기로서 군자 품성과 정서 함양,, 지각적 감성에 유효한지라 정직하오 단정한 선비를 벗 삼아 청풍명월의 정취를 읊조리며 회포를 풀되 품위에 유념하라.
11. 내 자손들은 매와 개로 사냥을 일삼아 살생과 함께 소일만 하는 망령된 취미에 빠져 문벌을 잃지 않게 하라.
12. 입은 화복의 문이라. 옛 성현의 자취에서 법으로 삼거나 경계할 것만을 환담하고 정치 종교 명예훼손 될 말을 삼가라
13. 친척이나 벗이 소첩에 빠져 있는 집이나 미망인 집에 드나드는 것을 삼가고 내 집에 불러 상종하라.
14. 여색은 명예와 절조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 신중치 못하고 순간적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종신의 흠을 남기지 마라.
15. 공사간 연희 등 환락의 자리에서 기생들과 의혹될 일을 조심하며 오래 머물지 말고 핑계를 만들어 물러나라.
16. 판관이나 대사간이 되면 공정을 사명으로 부당한 청탁은 물리치고, 호족과 여자 문제는 더욱 소홀함이 없게 하며 애매한 사건은 받아들이지 마라.
17. 우리집은 후손에게 전할 만한 보화가 없느니, 오직 청백으로 보배를 삼을 따름이라. 다만 내가 평생 밟아온 일들을 기록한 것과 원하는 바를 적은 책이 있으니, 이것을 잘 살펴 불후의 가법으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힘쓰고 또 함쓸지니라.
서기 1455년(단종 3년, 세조 1년) 을해 맹추 상순 78세, 늙인이의 손으로 써서 전하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