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리의 유래
심천면의 한복판 비단강 기슭에 자리한 초강리는 땅이 기름지고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넉넉한 인심으로 풍속을 가꾸며 살아온 전통있는 선비문화 마을로 이름난 고장자이다. 북으로 지프내 동으로 용댕이 동남으로 각계 남으로 약목골 서로 고당개와 접하고 있는 우리 마을은 금강의 본류와 영동천 초강천이 일구어낸 넓은 벌판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처음에는 크다는 뜻을 학과 풀이라는 뜻의 새가 합쳐진 한새말이라 불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대초지리’라 했는데 그 뒤 한새말이 황새말로 변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한 영동의 옛이름 길동에 속했고 고려 때에는 상주목에 속했던 죽주의 관할지역으로 구초마을이라 전하며 조선시대에는 계산죽주영동이라는 이름으로 청주목에 이속되었던 영동의 서일면에 속한 ‘대초지리’였다.
1914년 일제의 군면제 폐합시책에 따라 심천면에 편입되면서 마을이름이 비로소 ‘초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초강리는 현재의 초강초등학교 자리를 중심으로 남쪽마을을 웃말, 서남쪽 강변마을을 수변촌, 북쪽마을을 아랫말, 동쪽의 경부선 철길넘어 큰엄지재로 넘어가는 골짜기 입구에 자리한 작은마을 잿골 등 다섯개 동네로 이루어진 군내에서 가장 큰 자연마을이다. 1984년 이 마을에서 발견된 문명기와의 기록으로 보아 구초라는 이름을 지닌 초강리는 고려시대에 이미 기와집이 있었던 큰 부자동네였고 조선시대에는 사설교육 기관인 초강서원이 세워졌던 학문의 중심고장으로 수많은 선비가 배출되었다. 1923년 5월 17일에 초강초등학교가 세워진 이래 수많은 졸업생들은 나라의 기둥으로 중추적 역할을 다했고 1964년 10월 30일에 설립된 심천중학교는 지역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1993년 8월 30일에서 1994년 5월 20일까지 농어촌진흥공사와 영동군이 시행한 심천지구 문화마울에 우리동네가 선정됨으로써 쾌적한 마을환경이 조성되어 왔다. 우리 주민들은 영동군의 지원 아래 출향인사들과 함께 뜻을 모아 아담한 소공원을 조성하고 마을의 유래를 빗돌에 새기나니 이는 주민의 평안함과 발전을 기원하고자 함에 있다.
서기 2010년 7월 충남대하교 명예교수 문학박사 송백헌 짓고 주민일동 세우다.
출처 - 영동군청 홈페이지
본래 영동현 서일면 지역으로 1906년 영동군 서일면에 속하였고, 초강가에 있으므로 초강, 또는 황새가 많다하여 황새말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초지리 일부를 병합하여 초강리라 해서 영동군 심천면에 편입되었다.
초강동(대초지리:황새말) 잿골(잿말) 등이 있다.
초강초등학교, 심천중학교등의 관공서가 있으며 꽃과 수박 생산이 많으며, 포도 복숭아도 많이 생산되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