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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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유혹
사과 꽃 넘어 멀리 보이는 심천과선교 심천 지프내에도 새하얀 사과꽃이 가득 피었습니다. (사과꽃의 꽃말 : 유혹)
2021.04.19 -
영동 호서루(湖西樓)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금정리 산 1-1 호서루(영동군 향토유적 제37호-1996년 4월 15일 지정) 금강과 영동천의 합수지점으로 강물과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바라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건물은 조선 년(명종 8년)에 읍청 박사종이 약목리 장승산에 호호정(浩浩亭)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밀양박씨 문중에서 1959년 이곳에 재건하고 호서루(湖西樓)라 개칭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건물구조는 낮은 콘크리트 기단 위에 하부가 방형으로 가공된 8각의 고주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주심포 형식이며, 보머리에는 봉두를 초각하여 끼웠다. 가구형식은 5량가이며, 천정은 중도리 안쪽은 우물천정, 바깥쪽은 연등천정으로 하였다...
2020.11.05 -
날근리(고당3리)의 유래
#날근리(고당3리)의 유래 우리 마을은 심천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동은 #심천리, 서는 #장동리, 남은 #하고당리 #옥계리, 북은 #구탄리에 접하여 있고 영동천 용산천 양산천이 합류한 큰 금강줄기가 삼면이 마을을 휘어 감싸고 굽이쳐 유유히 흐르는 산자수려한 곳이다. 1670년경에 단양이씨의 시조인 배환의 23세손인 진생께서 지금의 초강리에 거주하시다가 경관이 아름답고 아늑한 이곳에 감탄하여 이주,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 오고 있다. 재의 호를 노은(늙어서 숨어산다)이라 칭하고 동이름도 노은동이라 불렀다고 전해오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근리로 변하여 불리던 중 시가 날로 변성되어 ‘#날근리’로 부르게 되었다. 단양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었다가 100년전 인척관계로 인연이 맺..
2020.08.28 -
난계 박연(蘭溪 朴堧)
#악성 #난계 #박연(1378~1458) 조선 초기 문신인 난계 박연 선생은 천재적인 음악가이자 음악 이론가로 음악계의 태두이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게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선생은 고려 우왕 4년에 삼사좌윤 #박천석 공의 아들로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초명은 연, 자는 탄부요 호는 난계, 시호는 #문헌공이며 밀양박씨 복야공파 중에 우뚝 선 인물이다. 난계는 영동향교에서 수학한 후 34세인 태종 11년(14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 등 요직을 두루거쳐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고, 관습도감제조로 있는 동안 작곡과 연주 뿐만아니라 악기의 조율, 궁정음악의 정립 및 혁신 등 음악에 관계되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음악은 하늘의 소..
2020.08.28 -
난계 박연 생가
난계(蘭溪) 박연(朴堧) 생가 난계 박연 선생은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 8월 20일 이곳에서 출생 태종 5년(1405년)인 28세에 생원이 되었꼬, 34세(14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 관습도관제조, 악학별좌, 대제학 등을 역임 후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할 뻔 하였으나, 세 임금에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 4년(1458년) 3월 23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안채, 사랑채를 학술용역을 근거로 복원하였다. 생가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은 전후퇴가 있는 겹집에 전면퇴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하고 한켠에는 부엌과 곡식창고를 부설한 고미반자에 우진각의 기..
2020.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