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리(영동읍 비탄리)의 유래

2020. 11. 16. 11:032020. 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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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앞 개울 밑에 깔려있는 암석이 마치 고기가 여울을 오르는 형상이라 하여 비탄(飛灘)이라 이름지어진 우리 마을은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로서 선조들께서 조선중엽에 난을 피해 터전을 마련한지 400여년이 지나는 동안 열악한 입지조건을 강인한 자립정신과 협동심으로 극복하여 교통 식수 등 타마을에 부럽지 않는 편리한 생활환경을 조성하였다.

 

 특히 일제에 의해 민족문화가 말살될 위기에 처한 암울했던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마을입구에 개량 서당을 세워 우리글과 역사를 가르치는 등 민족정신을 계승하는데 앞장섰으며 우리마을에서 배출된 많은 인재들이 민주주의의 기초인 영동읍 의회의원, 초등학교 교장, 대학교수 등 각계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우리 동민은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여 60년대에는 영동에서 가장 모범 마을로, 70년대에는 품질 좋은 연초생산, 80년대에는 과수로 전환하여 높은 소득을 올렸으며 오늘에는 전국 제일의 명품포도를 생산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는 자립마을로 성장하였다.

 

 우리 동민들은 이제 자만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단결하여 선조들의 훌륭한 정신을 이어받아 물려주신 터전을 보존하고 자연을 보호하여 후세에 더욱 윤택한 환경을 물려주는 계기로 삼고자 힘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서기 1998년 8월 25일. 비탄리 마을 주민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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